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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4-28 14:56
글쓴이 :
musicologist
조회 : 6,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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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edia.daum.net/politics/dipdefen/view.html?cateid=1068&newsid=2… [2452] |
연합뉴스 | 이충원 | 입력 2011.04.28 13:36 | 수정 2011.04.28 13:49
(도쿄=연합뉴스) 이충원 특파원 = 조선왕실의궤가 89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은 환수 운동을 벌인 민간단체와 한일도서협정을 체결한 양국 정부 외에도 일본에서 이를 도운 '숨은 공신'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궤 환수위원회 사무처장인 혜문 스님이 가장 감사해 하는 건 재일동포 3세인 김순식(39) 변호사다. 김 변호사의 국적은 한국이 아니라 '조선'이다. 일본 법률상으로는 무국적자지만, 한국에서는 북한 국적자로 오해받곤 한다.
김 변호사는 2003년 12월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 지사가 에다가와(枝川) 조선학교를 폐교 위기로 내몰았을 때 한국 단체의 도움을 받아가며 소송으로 맞선 경험이 있다. 이같은 인연으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소속 변호사를 통해 2004년께 일본 법률에 밝은 변호사를 찾던 혜문 스님과 연결됐다.
이후 김 변호사의 표현으로는 "우리 민족의 역사 자체"인 조선왕조실록이나 조선왕실의궤를 돌려받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다. 2006년 10월6일 궁내청을 방문해서 처음 의궤를 봤을 때에는 "사진 촬영은 안 된다"는 공지를 무시하고 '일본 정부는 조선왕실의궤를 즉시 반환하라'고 적은 플래카드까지 펼쳐들고 사진을 찍는 '불법'을 저지르기도 했다.
동포인 김 변호사 말고도 우익 인사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약탈 문화재 반환을 통한 한일 우호 증진에 앞장선 일본 정치인들도 큰 기여를 했다.
특히 이시게(石毛) 에이코(71) 민주당 부대표와 가사이 아키라(笠井亮.57) 공산당 의원은 문화재 반환과 관련된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열성을 보였다. 일본 공산당은 한국 국회가 2006년 12월8일 의궤 반환 요구 1차 결의를 한 직후인 2007년 6월에 일찌감치 이 문제로 대정부 질의를 하는 등 기민하게 움직였다. 배경에는 야마우치 사토시(山內塚)라는 한국어를 잘 하는 젊은 보좌관의 역할도 있었다.
일본 시민단체도 좌우 성향과 관계없이 '문화재 제자리 찾기'를 거들고 나섰다.
민주당 등 일본 국회 사정에 밝은 시민운동가 아리미쓰 겐(有光健)씨는 지난해 6월부터 '한국.조선 문화재 반환 문제 연락회의(문화재 연락회의)'를 만들어 한국 단체와 일본 국회를 연결하는 역할을 맡았다. '일조(日朝)협회'라는 단체의 와타나베 미쓰구(渡邊貢.82) 회장도 마찬가지다. 2007년 11월28일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당시 일본 총리에게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 의궤 반환에 힘쓴 와타나베 회장은 최근 뇌경색으로 거동조차 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언론도 의궤 반환에 우호적이었다. 혜문 스님은 일본에 있을 때부터 한일 양국을 오가며 의궤 반환 문제를 기사화한 나카노 아키라(中野晃) 아사히신문 서울 특파원에게 특별한 감사의 뜻을 표했다.
chung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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